History of Art15 물랑루즈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신체장애를 딛고 화가로 툴루즈-로트렉의 정식 이름은 앙리 마리 레이몽 드 툴루즈-로트렉 몽파(Henri Marie Raymond de Toulouse-Lautrec-Monfa, 1864~1901)입니다. 기나긴 그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12세기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선대로부터 지속되었던 근친혼으로 인해 유전적인 결함을 타고 태어난 데다, 14세와 15세에 연달아 낙상 사고를 겪으면서 척추가 손상되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150cm가량에 멈춰 버린 키에 하반신이 유독 짧아 지팡이가 없이는 제대로 걸을 수 없었으며, 말을 할 때는 발음마저 어눌했습니다. 신체활동이 극히 제한되었던 그에게 부모는 소일거리이자 교양의 일환으로 미술을 권하였고, 그.. 2023. 2. 7. 근대 조각의 선구자, 오귀스트 로댕(3) 단선적인 내러티브의 단절 19세기 팬터그래프(pantographe)라는 기술의 발명으로 조각가들은 작품의 크기를 확대하거나 축소하여 얼마든지 재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댕 역시 이러한 기술에 힘입어 하나의 작품을 다양한 크기로 변용하여 양산하였지요. 또한 로댕은 각기 다른 작품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마코타주(marcottage) 방식을 자주 사용했는데, 이는 조각가로 데뷔하기 전 그가 오랫동안 종사했던 건축 장식업을 통해 습득한 기술이었습니다. 마코타주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한데 모아 작품으로 제작하는 현대미술의 기법인 아상블라주(assemblage)의 시초가 됩니다. 로댕의 예술세계를 집대성했다고 평가되는 은 팬터그래프와 마코타주의 기술이 광범위하게 적용된 예입니다. 1880년 .. 2023. 2. 3. 근대 조각의 선구자, 오귀스트 로댕(2) 자의적인 해석 위에 구현된 인체 로댕은 전통적인 소재를 자주 다루었으나 관습적으로 도식화된 표현법을 지양하고 주제에 대한 본인만의 주관적인 해석을 더욱 강조하였습니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입니다. 1884년 칼레시의 의뢰로 제작된 이 작품은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잉글랜드 군에 포위되었던 칼레 시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시민대표 6명의 희생적인 미담을 다룬 것입니다. 그러나 로댕에 의해 묘사된 이 호국영웅들의 일화에는 죽음을 불사했던 그들의 결연한 의지와 비장함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죽음을 목전에 둔 나약한 인간의 절규와 고통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시민대표들을 향했던 기존의 존경 어린 시선으로부터 탈피하여 로댕은 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솔직한 내면세계를 조명하고자 했던 것.. 2023. 2. 1. 근대 조각의 선구자, 오귀스트 로댕 (1) , 로댕, 1875-1876 장식공에서 조각가로 18세기 이래 건축의 일부를 장식하는 기능으로 전락했던 조각이 다시 예술의 지위와 장르의 자율성을 획득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단연코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입니다. 그가 근대 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요.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이 질곡이 많았던 로댕의 삶 또한 그의 신화를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습니다.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로댕은 14세에 국립공예실기학교에 입학하여 조각가로서의 기초를 다졌으나, 1857년부터 세 차례 연달아 국립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의 입학시험에서 낙방을 합니다. 이후 갖가지 부업으로 생업을 이어가며 야간 제작에 몰두하다가 1862년 사랑하는 누이의 사망에 충.. 2023. 1. 30. 이전 1 2 3 4 다음